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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부부, 이 정도 일에 왜 이렇게 서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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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8-15 17:02 54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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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커플)관계에서 작다고 생각되는 일에 크게 서운해지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하단 텍스트로도 읽어보실 수도 있습니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사람이 비슷한 당혹감을 겪습니다. 분명히 사랑해서 함께 살기 시작했는데, 정작 마음이 크게 흔들리는 순간은 큰 사건이 아니라 사소한 장면에서 찾아옵니다. 하루를 힘들게 보내고 돌아와 한마디를 꺼냈는데 상대가 휴대전화를 보며 건성으로 대답할 때, 애써 해낸 일을 말했는데 "그래?" 한마디로 지나갈 때, 서운함이라고 부르기엔 지나치게 깊은 감정이 올라옵니다. 그 감정의 정체를 두고 스스로도 당황합니다. 이 정도 일에 왜 이렇게 까지 무너지는지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신분석가 하인츠 코헛이 여기에 관해 쓴 게 있습니다. 그는 사람에게 '자기대상'이라 부르는 관계 경험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코헛은 그 일을 세 갈래로 나눠 봤습니다. 하나는 누가 나를 봐 주는 일입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말했을 때 상대가 고개를 들고 눈을 맞춰 주는 것. 다른 하나는 흔들릴 때 기댈 데가 되어 주는 일이고, 마지막은 나와 비슷한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는 걸 알려 주는 일입니다. 평소에는 이런 게 오가는 줄도 모릅니다. 아침에 나가면서 "다녀올게" 했을 때 상대가 쳐다봐 주는 걸 세어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쳐다보지 않으면 그때부터 세기 시작합니다. 배우자에게 느끼는 그 설명 안 되는 서운함은 대개 여기서 옵니다. 애정이 식은 게 아니라 그날 하루 이게 오가지 않은 겁니다.
세 번째 것은 특히 눈여겨볼 만합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바람, 우리가 흔히 소울메이트라고 부르는 게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런 사람을 찾는 마음은 철없는 환상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 말에 딸려 오는 기대입니다. 결혼 전에 "우리는 진짜 잘 맞는다"는 말을 몇 번 씩 주고받은 커플이, 2년 쯤 지나 "내가 사람을 잘못 봤나 보다"라고 말하는 경우를 상담실에서 자주 봅니다. 그 사이에 무슨 큰일이 있었던 게 아닙니다. 그저 서로 다른 부분이 하나씩 드러났을 뿐인데, 완벽하게 통하는 사람을 만났다고 믿었던 쪽에서는 그게 배신처럼 읽힙니다. 완전히 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통했다가 어긋나고 다시 통하는 일이 반복됩니다.
배우자에게 이 세 가지를 바라는 게 지나친 요구는 아닙니다. 코헛은 이런 필요가 어른이 되면 사라지는 게 아니라 평생 형태만 바꿔 이어진다고 봤고, 성인에게 배우자는 그 필요가 향하는 첫 번째 사람입니다. 알아봐 주기를 바라고, 기대고 싶고, 우리는 같은 편이라고 느끼고 싶은 마음은 결혼이라는 관계에 원래 들어 있습니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부부 쪽이 오히려 걱정스럽습니다.
그러니 물어야 할 건 기대해도 되느냐가 아니라, 그 기대를 어디까지 한 사람에게 걸어 두느냐 입니다.
신혼기에 어려움이 생기는 건 대개 그 기대가 한 사람 앞에 다 모이기 때문입니다. 결혼 전에는 회사에서 억울한 일이 있으면 퇴근길에 동기한테 전화했고, 주말에는 친구를 만났고, 잘 안 풀리는 일이 있으면 오래 알고 지낸 선배를 찾아갔습니다. 결혼하면 그게 전부 저녁 식탁 하나로 옮겨 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도 오늘 하루 시달리고 온 사람입니다. 자기도 누가 좀 알아봐 줬으면 싶은 채로 앉아 있습니다. 배우자가 기대에 못 미치는 일은 그 사람이 부족해서라기 보다, 원래 여럿이 나눠 하던 일을 혼자 매일 하고 있어서 생깁니다.
전달되는 방식도 문제를 키웁니다. 이런 바람은 좀처럼 요청의 형태로 나오지 않습니다. "오늘 힘들었으니까 그냥 들어만 줘"라고 말하는 대신, 말 안 해도 알아채 주기를 기다립니다. 못 알아채면 그날 저녁 말수가 줄고, 상대는 뭘 잘못했는지 모른 채 눈치를 보다가 결국 "왜 그러는데"라고 묻고, 그 말투가 또 서운해서 "아니야"로 끝납니다. 그러고는 각자 할 일을 하거나 돌아 누워 휴대폰을 봅니다.
그래서 필요한 건 기대를 접는 일이 아니라 기댈 데를 늘리는 일입니다. 하루 종일 붙들었던 일의 무게는 같은 일을 하는 동료가 더 정확히 알아봐 줍니다. 나보다 먼저 이 시기를 지나 본 사람에게 물어보는 게 나을 때도 있습니다. 비슷한 때 결혼한 친구가 "우리도 그래"라고 한마디 해 주는 건 배우자가 아무리 다정해도 만들어 줄 수 없는 종류의 것입니다. 이렇게 나눠 두면 배우자한테 정이 덜 가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하루 쯤 놓쳐도 관계 전체가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오히려 더 편하게 기대게 됩니다. 다만 나누는 것과 피하는 것은 다릅니다. 정작 배우자에게 할 말을 늘 바깥에서만 하고 집에서는 입을 닫는다면 그건 회피입니다.
밖에서 이야기하고 돌아왔을 때 집에서 한 번 더 꺼낼 마음이 남아 있는지를 보면 됩니다.
코헛이 남긴 말 중에 가장 위로가 되는 건 마지막에 있습니다. 그는 완벽한 관계가 사람을 회복시킨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견딜 만한 정도로 어긋나는 경험이 사람을 자라게 한다고 봤습니다. 상대가 못 알아채고 지나갔다가 나중에 알아채고 돌아오는 일을 여러 번 겪는 동안, 나를 위로하는 힘이 조금씩 내 안으로 옮겨 옵니다. 소울메이트라는 게 있다면 처음부터 완벽하게 통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긋난 뒤에도 매번 돌아오기를 택한 사람일 겁니다. 그러니 미리 정해 둘 건 어긋나지 않는 방법이 아니라 어긋난 다음 돌아오는 방법입니다. 오늘 뭐가 서운했는지 비난 없이 한 문장으로 말해 보는 것, 원하는 반응을 쑥스러워도 그냥 말해 보
는 것, 상대 표정이 평소와 다른 걸 알아채고 먼저 말을 거는 것. 세 가지를 다 바라도 됩니다. 그 사람 혼자서, 언제나, 완벽하게 해 줄 필요가 없을 뿐입니다.
하단 텍스트로도 읽어보실 수도 있습니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사람이 비슷한 당혹감을 겪습니다. 분명히 사랑해서 함께 살기 시작했는데, 정작 마음이 크게 흔들리는 순간은 큰 사건이 아니라 사소한 장면에서 찾아옵니다. 하루를 힘들게 보내고 돌아와 한마디를 꺼냈는데 상대가 휴대전화를 보며 건성으로 대답할 때, 애써 해낸 일을 말했는데 "그래?" 한마디로 지나갈 때, 서운함이라고 부르기엔 지나치게 깊은 감정이 올라옵니다. 그 감정의 정체를 두고 스스로도 당황합니다. 이 정도 일에 왜 이렇게 까지 무너지는지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신분석가 하인츠 코헛이 여기에 관해 쓴 게 있습니다. 그는 사람에게 '자기대상'이라 부르는 관계 경험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코헛은 그 일을 세 갈래로 나눠 봤습니다. 하나는 누가 나를 봐 주는 일입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말했을 때 상대가 고개를 들고 눈을 맞춰 주는 것. 다른 하나는 흔들릴 때 기댈 데가 되어 주는 일이고, 마지막은 나와 비슷한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는 걸 알려 주는 일입니다. 평소에는 이런 게 오가는 줄도 모릅니다. 아침에 나가면서 "다녀올게" 했을 때 상대가 쳐다봐 주는 걸 세어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쳐다보지 않으면 그때부터 세기 시작합니다. 배우자에게 느끼는 그 설명 안 되는 서운함은 대개 여기서 옵니다. 애정이 식은 게 아니라 그날 하루 이게 오가지 않은 겁니다.
세 번째 것은 특히 눈여겨볼 만합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바람, 우리가 흔히 소울메이트라고 부르는 게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런 사람을 찾는 마음은 철없는 환상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 말에 딸려 오는 기대입니다. 결혼 전에 "우리는 진짜 잘 맞는다"는 말을 몇 번 씩 주고받은 커플이, 2년 쯤 지나 "내가 사람을 잘못 봤나 보다"라고 말하는 경우를 상담실에서 자주 봅니다. 그 사이에 무슨 큰일이 있었던 게 아닙니다. 그저 서로 다른 부분이 하나씩 드러났을 뿐인데, 완벽하게 통하는 사람을 만났다고 믿었던 쪽에서는 그게 배신처럼 읽힙니다. 완전히 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통했다가 어긋나고 다시 통하는 일이 반복됩니다.
배우자에게 이 세 가지를 바라는 게 지나친 요구는 아닙니다. 코헛은 이런 필요가 어른이 되면 사라지는 게 아니라 평생 형태만 바꿔 이어진다고 봤고, 성인에게 배우자는 그 필요가 향하는 첫 번째 사람입니다. 알아봐 주기를 바라고, 기대고 싶고, 우리는 같은 편이라고 느끼고 싶은 마음은 결혼이라는 관계에 원래 들어 있습니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부부 쪽이 오히려 걱정스럽습니다.
그러니 물어야 할 건 기대해도 되느냐가 아니라, 그 기대를 어디까지 한 사람에게 걸어 두느냐 입니다.
신혼기에 어려움이 생기는 건 대개 그 기대가 한 사람 앞에 다 모이기 때문입니다. 결혼 전에는 회사에서 억울한 일이 있으면 퇴근길에 동기한테 전화했고, 주말에는 친구를 만났고, 잘 안 풀리는 일이 있으면 오래 알고 지낸 선배를 찾아갔습니다. 결혼하면 그게 전부 저녁 식탁 하나로 옮겨 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도 오늘 하루 시달리고 온 사람입니다. 자기도 누가 좀 알아봐 줬으면 싶은 채로 앉아 있습니다. 배우자가 기대에 못 미치는 일은 그 사람이 부족해서라기 보다, 원래 여럿이 나눠 하던 일을 혼자 매일 하고 있어서 생깁니다.
전달되는 방식도 문제를 키웁니다. 이런 바람은 좀처럼 요청의 형태로 나오지 않습니다. "오늘 힘들었으니까 그냥 들어만 줘"라고 말하는 대신, 말 안 해도 알아채 주기를 기다립니다. 못 알아채면 그날 저녁 말수가 줄고, 상대는 뭘 잘못했는지 모른 채 눈치를 보다가 결국 "왜 그러는데"라고 묻고, 그 말투가 또 서운해서 "아니야"로 끝납니다. 그러고는 각자 할 일을 하거나 돌아 누워 휴대폰을 봅니다.
그래서 필요한 건 기대를 접는 일이 아니라 기댈 데를 늘리는 일입니다. 하루 종일 붙들었던 일의 무게는 같은 일을 하는 동료가 더 정확히 알아봐 줍니다. 나보다 먼저 이 시기를 지나 본 사람에게 물어보는 게 나을 때도 있습니다. 비슷한 때 결혼한 친구가 "우리도 그래"라고 한마디 해 주는 건 배우자가 아무리 다정해도 만들어 줄 수 없는 종류의 것입니다. 이렇게 나눠 두면 배우자한테 정이 덜 가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하루 쯤 놓쳐도 관계 전체가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오히려 더 편하게 기대게 됩니다. 다만 나누는 것과 피하는 것은 다릅니다. 정작 배우자에게 할 말을 늘 바깥에서만 하고 집에서는 입을 닫는다면 그건 회피입니다.
밖에서 이야기하고 돌아왔을 때 집에서 한 번 더 꺼낼 마음이 남아 있는지를 보면 됩니다.
코헛이 남긴 말 중에 가장 위로가 되는 건 마지막에 있습니다. 그는 완벽한 관계가 사람을 회복시킨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견딜 만한 정도로 어긋나는 경험이 사람을 자라게 한다고 봤습니다. 상대가 못 알아채고 지나갔다가 나중에 알아채고 돌아오는 일을 여러 번 겪는 동안, 나를 위로하는 힘이 조금씩 내 안으로 옮겨 옵니다. 소울메이트라는 게 있다면 처음부터 완벽하게 통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긋난 뒤에도 매번 돌아오기를 택한 사람일 겁니다. 그러니 미리 정해 둘 건 어긋나지 않는 방법이 아니라 어긋난 다음 돌아오는 방법입니다. 오늘 뭐가 서운했는지 비난 없이 한 문장으로 말해 보는 것, 원하는 반응을 쑥스러워도 그냥 말해 보
는 것, 상대 표정이 평소와 다른 걸 알아채고 먼저 말을 거는 것. 세 가지를 다 바라도 됩니다. 그 사람 혼자서, 언제나, 완벽하게 해 줄 필요가 없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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